나의 모로코

 어쩌다 한겨레 곽윤섭 기자가 쓴 전시회 기사를 보게 되었고, 기사에 실린 사진이 인상에 남아 결국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 엠에 갔다.
 
 명동역에서 내려 신세계에 들렀다가 충무로역까지 걸었다. 극동빌딩에서 바로 중부경찰서 방향으로 가면 되는데 한바퀴 돌아 간 셈이다.

 갤러리 엠은 중부경찰서를 마주 보고 있다. 길에서 바로 계단으로 통했다. 평일이라 그런 지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브뤼노 바르베가 모로코에서 찍은 사진 열 다섯 점이 벽에 걸려 있었다. 사진 옆에 번호만 매겨 놓았을 뿐 작품제목이나 설명이 없었다. 전시관 가운데 탁자가 있고 팜플렛과 작품제목이 적힌 종이가 투명파일에 담겨 있었다.

 파일을 들고 사진들을 돌아봤다. 혼자서 천천히 두 번을 봤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짧았지만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모로코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시된 사진에는 현대적이지 않고, 자본과 거리가 먼 풍경이 단순한 구도에서 강한 빛을 내고 있다. 소장해서 곁에 두고 보면 좋겠다.
 

by namja | 2008/11/07 20:23 | Traveler | 트랙백 | 덧글(0)

밤은 노래한다

"박도만, 최도식, 안세훈, 박길룡 등 혁명을 꿈꾸는 네 명의 중학생들과 그들의 친구인 이정희라는 신여성, 그리고 만철의 조선인 측량기사로 이정희를 사랑했던 김해연에게 찾아온 잔인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해제 중, 한홍구)

사랑이 아니었다면, 김해연은 일제치하에서 궁핍하지 않게, 일본인 회사에 다니며 그럭저럭 잘 살아나갔을 것이다. 사랑만 아니었다면.
사랑에 빠진 순간 세상은 김해연에게 더없이 잔인하게 변한다. 사랑은 죽고, 죽은 사랑 때문에 삶은 헝크러진다.
귀머거리에 벙어리가 되고, 눈동자는 멍해지고, 약에 취해 시간을 흘려보낸다.
사랑이 할퀴고 간 상처는 다른 사랑만이 치유할 수 있다고 했나? 김해연은 여옥이를 통해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온다.
그리고 혁명의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간다.
혁명, 동지, 사상, 열정, 사랑, 전투, 믿음, 의심, 배신, 회한, 살인, 복수...
김해연이 살아낸 세계는 깊은 밤이었지만 별이 빛났다.   

by namja | 2008/11/05 23:33 | Books | 트랙백 | 덧글(0)

아내가 결혼했다

결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무덤 속으로 먼저 걸어들어간 선배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아내가 결혼했다>는 한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결혼하는 이야기.
낯익은 삼각관계. 여자와 남자를 자리바꿈하면 세대를 거치며 되풀이 된 여자의 슬픔이 보이지 않는가? 남자는 축첩을 해도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바람, 남자의 바람, 그 바람에 맥없이 주저 앉아 이를 아물고 슬픔을 삼키던 여자. 바람난 남자도 결국 돌아올 곳은 조강지처가 있는 집. 인내하며 기다리면 언젠가 돌아온다.

이 구도를 뒤집는 발칙한 상상의 소설이 나왔고 이어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인아와 결혼을 통해 인아를 구속하고 싶은 덕훈.
축구를 하듯 서로 공격과 수비를 거듭하더니 결국 덕훈은 인아와 결혼에 골인한다.
결혼하면 애 낳고 조신하게 변할 줄 알았던 인아는 여전히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오기도 하고 다른 남자와 만나기도 한다.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간 인아는 함께 일하던  '그놈'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선언한다. 덕훈은 충격에 휩싸이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인아를 설득해보려 하지만 소용없다.

인아는 두 집 살림을 충실히 해나가고 덕훈도 나름 바람을 피우며 선전한다.

인아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자 덕훈은 유전자 검사까지 하면서 자신의 핏줄임을 확인하고 유일한 아버지가 자기임을 선언한다. 인아는 아이를 데리고 떠난다.

결국 외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네 사람을 보여주며 끝이 나는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언제까지나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까?

결혼 형식은 화려해지고 의미는 색이 바래는 경향인데 일처다부제가 좋은 대안이 될까?
가장이 두 명이면 수입도 많아질 것이고 자식은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평화롭기만 하다면 좋지 아니한가? 라고 생각할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버릴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잠깐 괴롭지만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처럼 보이니...  


by namja | 2008/10/27 22:54 | Movies | 트랙백 | 덧글(4)

공중그네

최근 세계가 공황 상태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한계상황에 도달한 듯한 느낌이다. 공포와 불안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대통령은 오만방자함에 빠져있고, 정치인은 국민은 뒷전이고 비리에 열중한다.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서민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불안한 소문들이 세상을 떠돌며 불안을 부풀린다. 질식해 죽겠다.

이라부를 만나러 이라부 종합병원 지하로 간다. 뚱뚱하고 제멋대로인 중년 정신과 의사 이라부에게 말도 안되는 상담을 받고, 섹시한 간호사에게 강제로 비타민 주사 한 방 맞고 싶다. 계속 맞고 싶다. 정신적 불안감이 사라질 때까지.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처럼 보이지만 개연성 있는 인물들이 우연히 이라부를 찾아가게 되고 이상한 매력에 이끌려 치료를 받고 낫는다. 치료방법이 뜻밖이다. 이라부는 문제를 안고 찾아온 인물들과 함께 놀아준다. 철없는 아이처럼 굴며 사회에 길들여진 어른들의 본성을 흔들어 깨운다. 일어나라고, 일어나서 아이처럼 하고 싶은 대로 놀아 보라고 부추긴다. 처음엔 황당하고, 기가막히지만 한 번 이라부에게 걸리면 벗어날 수 없다. 스스로 깨달아 병을 극복할 때까지.

사회적 위치와 나이, 법규, 예의범절, 도덕, 규칙에 얽매여 잔뜩 주눅든 현대인들에게 가볍게 일탈을 주문한다.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감독하려는 인간들의 욕구가 결국 부메랑처럼 다시 날아와 스스로를 위협한다. 위협은 강박을 만들고 강박은 제약을 만들고, 제약은 정신을 좀먹는다. 정신은 신체를 구속한다. 오,오,오......        

by namja | 2008/10/25 16:15 | 트랙백 | 덧글(0)

스키다마링크

 할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 책 두 권을 샀다. <스키다마링크>와 <공중그네>.
 가끔 서울에 갈 때면 전철을 한 시간 이상 타야하기 때문에 너무 심심하다. 피곤하지 않으면 잠도 안 오고, 음악을 듣기엔 너무 소란스럽고, 잡지는 너무 짧고, 그나마 소설책이 최고다. 
 <구해줘>로 우리에게 알려진 기욤 뮈소가 27살 때 쓴 장편소설 데뷔작이다. 알랭 보통 이후 오랜만에 읽은 프랑스 소설이다.
 <스키다마링크>는 주요 등장인물 네 명이 각자 소포를 받으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소포에는 도난당한 명화 '모나리자' 4분의 1 조각과 유명한 글귀, 주소와 시간이 적힌 명함이 들어있다. 서로 아무 연결고리가 없는 인물 네 명이 모나리자를 통해 한 장소에서 만나고, 엄청난 사건에 빠져든다.
 초국가기업 마이크로글로벌 회장 스타이너가 납치당한 것과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연관성이 드러나면서 멕코일, 매그너스, 비토리오, 바버라는 생명을 위협받게 된다. 네 사람은 갈등과 협렵 사이를 오가며 머리를 맞대고 사건을 풀어나간다.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면서 미국 부통령 멜라니 앤더슨과 네 사람의 관계가 드러난다.
 현대 세계를 움직이는 네 가지 가치관(과학, 자유주의, 개인주의, 민주주의) 때문에 생긴 문제들을 재료로 삼아 인간이 어떤 가치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재미있게 요리했다.
 기욤 뮈소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올바르게 보여서 다른 작품도 읽어 볼 마음이 생겼다.   
   
  

by namja | 2008/10/15 22:56 | Books | 트랙백 | 덧글(0)

소설가 김연수를 만나다

                               봉투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

10월 13일 저녁 7시 상상마당 6층 카페에서 '북살롱'이 열렸다.
김연수 작가가 낸 신작 소설 <밤은 노래한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행사가 시작하기 10분 전쯤 카페에 도착했는 데 사람들이 가득했다. 참석 확인을 하고 받은 흰 비닐봉투 안에 <밤은 노래한다> 책 1권, 라 부에나 비다(la buena vida) 컴팩트디스크 1장, 핸드폰고리 1개, 금장책갈피 1개, 북살롱 광고지 1장이 들었다.
빈자리를 찾아 뒤쪽으로 갔다. 의자 위에 종이가 한 장씩 놓여 있었다. 작가에게 궁금한 점을 적어 내도록 한 것이다. 
달리기와 글쓰기의 연관성에 대해 간단한 질문을 적었다.

김연수 작가가 등장했다. 작가소개를 하기 전에 불쑥 들어와 사회자가 조금 당황했다. 이어 사회자는 간단하게 작가를 소개했고, 행사가 시작되었다. 
행사 대부분은 소설을 낭독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먼저, 김연수 작가가 서너 장면을 낭독했고, 관객 가운데 세 명이 더 낭독했다. 김연수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들었다는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낭독이 끝난 다음 질문 시간이 있고, 질문지를 모은 바구니에서 세 명을 뽑아,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참고했던 서적을 한권씩 주었다. 소설을 낭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질문시간은 짧았다. 

행사가 끝난 다음 사인회가 열렸다. 사람이 많아서 그냥 나올까하다가 참고 기다렸다. 거의 마지막으로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님께 2008년 가을에 김연수" 단정한 글씨체다. 사인을 하는 동안, "운동 계속 하세요?"라고 물었더니, 마라톤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마라톤에 대한 칼럼을 잘 읽었다고 말해주었다.   

김연수 작가는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에게 더욱 관심이 가며 그 이유는 우리 대부분이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가을이니까 가을을 느껴야 한다고, 다음은 없다고 말했다.   

                               김연수 작가의 사인





by namja | 2008/10/15 00:10 | Books | 트랙백 | 덧글(2)

<좋아서> - 자라섬 언저리에서 만난 소박한 재즈 공연


언젠나
이 젊은 음악인들이
음악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by namja | 2008/10/06 19:39 | Traveler | 트랙백 | 덧글(0)

멋진 하루


  <멋진 하루>를 봤다.
나를 포함 다섯 명 정도 관객들이 있었다. 오후 3시 30분, 월요일.

희수(전도연)는 병운(하정우)를 찾아 간다. 경마장으로.
1년 만에 그녀가 그를 찾아간 이유는 하나, 빌려 준 돈 350만원 돌려받기.

병운은 희수와 함께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리러 다닌다. 
병운이 돈을 빌리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병운의 속사정이 드러난다.
사업실패, 파산, 그리고 이혼.

희수는 결혼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둔다. 그러나, 부하직원의 횡령으로 실업자가 된 약혼자와 헤어진다.
직장도 없고, 결혼도 못한 희수.

두 사람은 불편한 동행길에 나선다.

불행에 대처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다르다.
병운은 '한심하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희수는 '잔뜩 웅크린 고양이' 처럼 불안하다.
채권자와 채무자로 다시 만난 옛 연인은 티격태격한다.
희수는 공격하고, 병운은 수비한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타인에게 풀어 버리려는 희수의 공격은 점점 무뎌진다.
반대로 모든 불행을 자신의 탓으로 받아들이는 병운의 수비는 허술하지만 포용력이 있다.

<멋진 하루>가 보여주는 하루는 전혀 멋지지 않다.
그깟 돈, 빌려줬으면 그만이지 아웅다웅하는 모양이 참 한심스럽다.
감추고 싶은 생활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모르고 사는 편이 훨씬 정신건강에 유익한 그런 사실들.

'사는 게 다 그렇다'





by namja | 2008/10/06 19:18 | Movies | 트랙백 | 덧글(0)

영화는 영화다 - 이전투구



 나는 오늘도 현실과 꿈 사이에 가로 놓인 줄을 탄다. 현실과 꿈 사이의 거리는 아득하고,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다. 균형을 잡을 장대도 없다. 에라이, 눈을 질끈 감고 자전거 페달을 밞는다.

 강패(소지섭)는 깡패고, 수타(강지환)는 배우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일 때도 있지만, '꿈의 공장'이다. 어디까지나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영화다>라는 영화에는 현실이 있고, 영화가 있다. 두 세계는 충돌한다. 주먹질을 해대며 이전투구처럼 물고 물린다. 
 
 피칠갑을 한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강패가 눈을 부릅뜨고 수타를 뚫어지게 응시한다. 나를 노려본다. 분노가 유일한 힘이라고.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러도 분노를 터뜨려야 한다고.

 이 영화 자꾸 생각난다. 그저 영화일 뿐이니까, 의미를 낚아 올린다고 영화가 현실이 되는 것도 아닌데...자꾸, 되짚어 보게 만든다. 윤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전투구 같은 삶에 대한 은유 같기도 하고, 숨죽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 같기도 하다. 

 
 
  

by namja | 2008/09/24 23:19 | 트랙백 | 덧글(0)

사랑을 믿다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서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한 남자가 있다. 실연을 당한 남자가 있다. 단골 술집에 앉아 사랑을 기다린다. 남자를 기다리게 하는 여자는, 남자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모른다. 남자는 여자와 20대 후반을 함께 보냈지만 연인 사이는 아니었다. 남자는 다른 여자와 사랑을 했고, 여자는 실연을 했다. 
 
 삼십대 후반 남자는 한 술집에서 여자를 만난다. 제육과 오징어 볶음을 반반씩 안주로 시켜 놓고, 맥주에 안동 소주를 섞어 '소맥'을 만들어 마신다. 두 사람은 실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로, 여자가 자기 친구가 실연 당한 이야기를 하고 남자는 추임새를 넣는다. 여자는 언뜻 자기가 실연 당한 이야기도 한다. 남자도 실연을 당했기 때문에 동지애를 느낀다. 

 여자는 고모가 남긴 유산을 받았다. 여자가 좋아했던 남자가 자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남자는 한다. 여자는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실연을 당했다고 생각했었다. 여자가, 실연 당한 이유가 금전적인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에 더욱 놀랐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고 헤어졌다. 남자는 오늘도 단골 술집에 앉아 기억을 축복하며 사랑을 기다린다.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겼다느는 건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지만 청춘에 대해서는 만종과 같다."

 이번 작품집에는 수상작 <사랑을 믿다> 외에 권여선의 자선작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정영문 <목신의 어떤 오후>, 하성란 <그 여름의 수사>, 김종광 <서열정하기 국민투표>, 윤성희 <어쩌면>, 천운영 <내가 데려다줄게>, 박형서 <정류장>, 박민규 <낮잠>이 실려 있다.

 정영문, 하성란, 박민규가 쓴 단편들이 인상에 남는다.

by namja | 2008/09/12 01:1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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